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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만 끄덕였잖아요” – 반혼수 상태 유언공증, 대법원이 무효라고 판결한 이유

by Kevin Yang 2026. 7. 5.

가족의 임종을 앞두고 가장 민감하게 대립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유산 상속입니다. 특히 고인이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 남긴 유언이나 공증의 효력을 두고 유족 간에 치열한 법적 공방이 벌어지곤 하는데요.

의식이 온전치 않은 반혼수 상태의 환자가 공증인의 질문에 말 대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면, 이를 적법한 유언공증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판례를 중심으로, 유언공증이 무효가 되는 구체적인 이유와 시사점을 알아보겠습니다.

 

로팜 이미지

 

1. 사건의 배경: 의식 불명 상태에서의 유언공증

사건의 주인공인 A씨는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불분명한 반혼수 상태로 투병 중이었습니다. A씨의 일부 자녀들은 공증인을 병실로 불러 모든 재산을 특정 자녀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의 유언공증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공증인은 침대에 누워있는 A씨에게 유언장을 읽어주며 이 내용이 맞습니까?”라고 물었고, A씨는 말로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공증인은 이를 고인의 명확한 의사표시로 판단하여 유언공정증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A씨가 사망한 후, 다른 자녀들은 이 유언공증의 효력에 강하게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반혼수 상태였고, 그저 반사적으로 고개만 끄덕였을 뿐인데 어떻게 이것이 정상적인 유언이 될 수 있느냐라며 유언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2. 핵심 쟁점: 민법상 구수요건의 충족 여부

이 사건의 성패는 유언공증의 핵심 절차인 구수(口授)’를 올바르게 이행했는지에 달려 있었습니다.

민법 제1068조에 따른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이 유효하려면 다음과 같은 엄격한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증인 2명이 참관할 것

유언자가 공증인의 면전에서 유언의 취지를 구수(말이나 입으로 전함)’할 것

공증인이 이를 봉독(읽어줌)하고 유언자와 증인이 승인한 후 서명 또는 기명날인할 것

여기서 구수란 유언자가 자신의 유언 내용을 입으로 직접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과연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 공증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행위가 이 구수에 해당할 수 있을지가 재판의 핵심이었습니다.

 

3. 대법원의 판단: “고개만 끄덕인 것은 유언공증 무효

대법원은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며, 해당 유언공증은 효력이 없다(무효)고 최종 판결했습니다. (대법원 1996. 4. 23. 선고 9534514 판결 )

대법원 재판부의 판단 근거:공증인이 유언자의 의사를 유도하는 질문을 하고 유언자가 이에 응하여 고개를 끄덕이거나 라고 답변한 것에 불과한 경우, 유언자의 의식이 온전하다 하더라도 이를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를 직접 구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하물며 유언자가 반혼수 상태에 빠져 있어 의사능력이 박약한 상태였다면, 단순히 고개를 끄덕인 행위를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표시로 인정할 수 없다.”

대법원이 이토록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이유는 유언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유언은 고인의 사후에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진짜 의사를 다시 물어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법이 정한 절차를 단 하나라도 누락하거나 왜곡하면 그 유언은 통째로 무효가 됩니다.

당시 병원 기록에 따르면 A씨는 혼미(Stupor) 또는 반혼수(Semi-coma) 상태로, 외부 자극에 제구실을 하는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상황에서의 고개 끄덕임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상속 의사가 아니라, 외부 자극에 대한 단순한 신체적 반사이거나 유도신문에 동조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4.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이 판례는 향후 상속 분쟁 예방과 유언장 작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첫째, 유언공증은 반드시 의식이 명료할 때 해야 합니다. 아무리 공증인이 입회하여 서류를 만들었더라도, 유언 당시의 의사능력(자신의 행위 결과를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 없었다면 법원에서 쉽게 뒤집힐 수 있습니다. 심신미약이나 치매 초기 상태라면 반드시 의사의 소견서나 진단서를 미리 확보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둘째, 유언자의 주도성이 중요합니다. 공증인이나 가족이 첫째에게 이 집을 주시는 게 맞죠?”라고 묻고 유언자가 수동적으로 대답하는 방식은 위험합니다. 조금 서툴더라도 유언자가 직접 내 재산 중 A 아파트는 첫째에게, B 토지는 둘째에게 준다처럼 주도적으로 내용을 구두 표현해야 법적 효력을 온전히 보장받습니다.

셋째, ‘공증이 무조건 만능은 아닙니다. 많은 분이 공증사무소만 거치면 모든 법적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지만, 공증서류 역시 당시 유언자의 건강 상태, 병원 진료기록, 증인의 자격 요건 등에 따라 사후에 무효화될 가능성이 늘 존재합니다.

5. 마치며

고개만 끄덕였잖아요사건은 슬프게도 준비되지 않은 이별 속에서 가족 간의 불신이 얼마나 큰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유언이 도리어 가족 간의 진흙탕 싸움이 되지 않으려면, 고인의 의사가 가장 맑고 온전할 때 법적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상속을 준비 중이시라면 법이 요구하는 형식을 철저히 확인하시어 소중한 의사가 왜곡되지 않도록 유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