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판례가 인정하는 관습법상 물권
부동산 권리분석을 하다 보면 등기부에는 아무런 권리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도, 그 토지를 낙찰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토지 사용을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관습법상 법정지상권과 분묘기지권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 민법은 물권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민법 제185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물권은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는 임의로 창설하지 못한다.”
즉 당사자끼리 합의했다고 해서 마음대로 새로운 종류의 물권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법률뿐만 아니라 오랜 사회생활 속에서 법적 규범으로 인정되어 온 관습법에 의해서도 물권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도 법률이나 관습법에 근거하지 않은 새로운 물권의 창설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판시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2002. 2. 26. 선고 2001다64165 판결은 이른바 ‘관습상의 사도통행권’을 독립된 물권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권법정주의에 반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판례가 실제로 인정하고 있는 대표적인 관습법상 물권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1. 관습법상 법정지상권
가장 중요한 것이 관습법상 법정지상권입니다.
예를 들어 갑이 토지와 그 위의 건물을 모두 소유하고 있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갑이 토지만 을에게 팔고 건물은 계속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토지와 건물은 우리 법상 서로 독립된 부동산입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건물 소유자인 갑은 다른 사람의 토지 위에 자기 건물을 두고 있는 셈이 됩니다.
그렇다고 토지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이유만으로 건물을 무조건 철거하도록 하는 것은 사회경제적으로 큰 손실입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토지와 건물이 동일인의 소유였다가 매매·증여·경매·공매 등으로 소유자가 달라지고, 건물을 철거하기로 하는 약정이 없다면 건물 소유자에게 그 건물을 유지하기 위한 지상권이 성립한다
고 보아 왔습니다.
이를 관습법상 법정지상권이라고 합니다.
대법원은 2022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이 관습법이 현재까지 유효하다고 다시 확인했습니다. 우리 법이 토지와 건물을 각각 독립한 부동산으로 취급하는 이상, 건물의 가치를 유지하고 건물 철거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립요건
판례를 토대로 정리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① 토지와 건물이 당초 동일인의 소유였을 것
② 이후 매매·증여·경매·공매 등으로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졌을 것
③ 소유자가 달라질 당시 건물이 존재하고 있을 것
④ 당사자 사이에 건물을 철거하기로 한 약정이나 토지 사용에 관한 별도의 약정이 없을 것
이 요건이 충족되면 건물 소유자는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관습법상 법정지상권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의할 점은 이 권리가 등기가 없어도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대법원 1984. 9. 11. 선고 83다카2245 판결은 관습법상 법정지상권은 관습법에 의한 부동산 물권 취득이므로 등기 없이도 성립하고, 토지를 취득한 제3자에게도 이를 주장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따라서 경매 권리분석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등기부에 ‘지상권’이라는 표시가 없더라도 현장에 타인 소유의 건물이 있다면 관습법상 법정지상권의 성립 여부를 반드시 검토해야 합니다.
2. 분묘기지권
두 번째 대표적인 관습법상 물권은 분묘기지권입니다.
분묘기지권이란 다른 사람의 토지 위에 설치되어 있는 분묘를 수호·관리하기 위하여 그 분묘가 있는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대법원 역시 분묘기지권을 오랫동안 관습법상 물권으로 인정해 왔습니다. 대법원은 분묘기지권이 타인의 토지에 분묘를 존속시키기 위하여 인정되는 지상권과 유사한 용익물권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분묘기지권은 크게 다음과 같은 형태에서 문제됩니다.
① 토지소유자의 승낙을 받아 분묘를 설치한 경우
토지소유자의 허락을 받아 다른 사람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경우입니다.
이를 흔히 승낙형 분묘기지권이라고 합니다.
최근 대법원은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경우에도 장기간의 토지 이용, 지가 상승, 당사자 관계의 변화 등의 사정을 종합하여 공평의 원칙상 필요하다면 토지소유자가 상당한 지료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② 자기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후 토지만 처분한 경우
자신의 토지에 조상의 분묘를 설치한 뒤 그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면서 분묘를 그대로 둔 경우에도 일정한 요건 아래 분묘기지권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③ 장기간 평온·공연하게 분묘를 관리한 경우
과거 판례는 다른 사람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후 20년 동안 평온·공연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한 경우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할 수 있다고 인정해 왔습니다.
다만 현재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과의 관계 때문에 분묘의 설치 시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실제 사건에서는 분묘가 언제 설치되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3. 분묘기지권이 있다고 토지를 공짜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분묘기지권과 관련하여 실무상 매우 중요한 판례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2021. 4. 29. 선고 2017다228007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 경우에도 토지소유자가 지료를 청구하면 그 청구한 날부터 지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분묘기지권이 인정된다 = 토지를 영원히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분묘기지권은 분묘를 유지하기 위한 토지사용권이고,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토지사용의 대가인 지료 문제가 별도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4. 모든 오래된 관행이 관습법상 물권은 아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토지를 이용해 왔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관습법상 물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이웃 토지를 길처럼 이용해 왔다고 하여 곧바로 ‘관습상 통행권’이라는 새로운 물권이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2002. 2. 26. 선고 2001다64165 판결도 법률이나 관습법상 근거가 없는 이른바 관습상의 사도통행권을 독립된 물권으로 인정하는 것은 민법 제185조의 물권법정주의에 반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예전부터 그렇게 해 왔다’는 사실과 ‘법률상 물권이 존재한다’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5. 경매에서는 왜 중요한가
관습법상 물권이 부동산 경매에서 특히 위험한 이유는 등기부만 보고는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경매 대상 토지에 다른 사람 소유의 건물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합니다.
- 토지와 건물이 과거 동일인의 소유였는가?
- 언제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졌는가?
- 그 당시 건물이 이미 존재했는가?
- 건물을 철거하기로 한 약정은 있었는가?
- 별도의 임대차 등 토지 사용관계가 있었는가?
이러한 사실에 따라 관습법상 법정지상권의 성립 여부가 달라집니다.
실제로 판례도 토지와 건물 소유자가 형식적으로 달라졌다는 사실만으로 무조건 법정지상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당사자 사이에 토지 사용에 관한 별도의 약정이 존재하거나 토지소유자가 건물 처분권까지 취득한 경우 등에는 관습법상 법정지상권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분묘가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장조사를 통해 봉분의 존재, 설치 시기, 관리 주체, 토지소유자의 승낙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합니다.
6. 권리분석에서 기억할 핵심
관습법상 물권은 등기부에 나타나는 권리보다 오히려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특히 부동산 경매에서 기억해야 할 대표적인 관습법상 물권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관습법상 법정지상권
토지와 건물이 동일인 소유였다가 소유자가 달라지는 경우 일정한 요건 아래 건물 소유자에게 인정되는 토지사용권입니다.
둘째, 분묘기지권
다른 사람의 토지 위에 있는 분묘를 수호·관리하기 위하여 일정한 범위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두 권리의 공통점은 모두 등기가 없더라도 성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경매에서 현장조사가 중요한 것입니다.
한 줄 정리
등기부에 아무 권리가 없다고 해서 그 토지에 아무런 부담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부동산 권리분석은 등기부에서 시작하지만 등기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특히 토지 위에 타인 소유의 건물이나 분묘가 있다면 관습법상 물권의 존재 가능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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